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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지미 리아오는 『별이 빛나는 밤』(씨네2뿍스, 2012년)이 좋아 기억하게 된 이름이다. 거기에는 성인이 된 여자가 소녀 시절에 만난 소년을 얘기한다. 소녀에게 운명처럼 들어온 남자애. 둘은 노란 불빛을 달고 달리는 푸른 밤의 기차 위에 나란히 서고, 배낭을 메고 붉은 해 지는 검은 들판을 나란히 걷기도 하며, 시골길을 달리는 트럭 짐칸에 나란히 기대 눕기도 하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물이 소용돌이치는 강 한가운데 바위에 눕기도 하며, 무지개 떠 있지만 바람 거세게 부는 언덕을 비옷을 입고 걷기도 한다. 별밤처럼 빛나는 시간을 함께한 그 애와 지금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 애는 영원한 별처럼 빛난다는 얘기다. 아름다운 그림과 아릿한 사연으로 가슴을 울렸는데 여자 남자 이야기인 이 책도 그런 감흥을 줄까 궁금했다.  여자는 교외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외출을 할 때 어디로 가든 왼쪽으로 가는 습관이 있다. 지금 비극적인 소설을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어둡고 슬프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여자는 종종 사는 게 재미없고 지루하다. 남자 또한 교외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도 외출을 할 때 어디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는 습관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들은 한 방향으로만 다니기 때문이다.  우연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공원의 분수 앞에서 만나게 된다. 분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걸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연인들 같았다. 함께 즐거움을 나누니 겨울은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두 사람은 즐겁고 달콤한 오후를 함께 보낸다. 해가 질 무렵 갑자기 큰 비가 쏟아진다. 남자와 여자는 서둘러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빗속에서 황급히 헤어진다.  여자는 남자의 전화를 행여 받지 못할까 아무데도 가지 못한다. 남자는 빗물에 얼룩진 쪽지를 보면서 엉뚱한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건다. 그들은 저마다 안타까움에 잠들지 못한다. 두 사람은 익숙하고도 낯선 도시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서로의 그림자를 찾아 헤맨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자는 어디로 가든 왼쪽으로 간다. 남자 또한 어디로 가든 오른쪽으로 간다.  사실 두 사람은 똑같은 갈색 고양이와 놀고, 똑같은 길 잃은 강아지에게 밥을 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때 똑같은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매일 똑같은 풍경을 보고, 똑같은 냄새를 맡는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아라베스트 연습곡을 듣는다. 그렇지만 정작 둘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여전히 여자는 어디로 가든 왼쪽으로 간다. 남자 또한 어디로 가든 오른쪽으로 간다. 그러니 만날 리가 없다. 기다림에 지친 둘은 떠난다. 이번에도 여자는 왼쪽으로 가고 남자는 오른쪽으로 간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분수가 아니라 호수다. 얼음이 언 둥근 호수를 걸으며 둘은 마주친다. 똑같이 여행 가방을 든 서로를 놀라운 반가움으로 발견한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왼쪽으로만 가고 오른쪽으로만 가는 차이만 있을까. 한 쪽으로만 가는 차이가 단순히 걷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데 있다. 그것은 비단 걷는 것을 포함하여 우리가 살아가면서 결정해야 하는 숱한 문제뿐 아니라 아주 근본적인 성향까지 포함할 것이다. 그렇지만 차이는 분명히 존중하되 차이를 떠나 서로 하나로 만나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어느 한 쪽이라도 자기의 방향만 고집한다면 우리는 결코 만날 수 없다. 분수나 호수처럼 환경에 의해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만 근본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자기의 방향을 되돌아보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서로의 차이를 넘어 여자와 남자가 진정으로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처음 출간 된 이후로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고, 작가 [지미 리아오]를 오늘의 위치에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1999년 처음 출판 된 이후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책 뿐만 아니라 영화, TV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연극, 뮤지컬등 여러 가지의 형태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지난 17여년 동안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300만명이 넘는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결코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사랑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사람이든, 누군가 나를 찾아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람이든, 사랑을 원하면 언젠가는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 동안 많은 독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요청으로 이번에 새로운 판형과 참신하고 새로운 번역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를 하게 되었다.